▲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이 제주 비자림을 걷고 있다.

7월 초 세계유산인 이탈리아 돌로미티산맥의 정상 빙하가 무너져 2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했다.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천연기념물 산굴뚝나비는 한라산에만 산다. 10년 전 해발 1,500m에서 발견되던 산굴뚝나비는 이제 1,650m 윗세오름 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다. 이 마저도 개체수가 줄어 앞으로는 더 높은 곳으로 가야 산굴뚝나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온난화 때문이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은 자연이 살아야 인간이 산다. 자연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기후변화, 온난화에 대비하는 것이라 말한다. 문화재하면 국보·보물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재의 16%는 자연유산이다. 하지만 그동안 동산문화재에 비해 자연유산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문화재 관련 주요 안건을 조사·심의하는 문화재위원회 제30대 위원장이 자연유산분야에서 나온 것은 의미가 있다. 자연유산분야에서 문화재위원장이 나온 것은 15년 전 이인규 서울대 교수 이후 전 위원장이 유일하다.

 

지난해 8월 위원장에 선출된 전 위원장은 “자연유산과 명승 사적 등 복합유산이 많은 요즘 기후변화는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슈다. 최근 지구온난화의 시계가 더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상 및 육상 생태계의 타격을 최소화할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첫걸음으로 자연유산법 제정과 국립자연유산원 설립을 강조했다. 전 위원장은 “국보·보물 등 문화재는 인공적인 건축물 등의 보호를 받지만, 천연기념물은 그렇지 못하다.”며 “지금까지 수집된 표본이나 자료를 연구하고 전시할 공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자연유산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할 수 있는 국립자연유산원 설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전 위원장은 “문화재 정책에 있어 세계적 위상에 맞는 패러다임의 전환 즉 문화재 명칭변경 및 분류체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문화재’는 재화적 성격이 강하게 반영된 일본식 용어이다. 이를 대신해 미래 세대에 물려준다는 의미가 포함된 '국가유산'이란 단어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 전 위원장의 설명이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과의 인터뷰는 7월 16일 자연유산 촬영을 위해 방문한 제주 비자림에서 진행됐다.

 

‘비자림’ 규모가 세계적이고 학술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제주 비자림 

 

제주 비자림은 어떤 곳인가?

“제주 비자나무 숲은 평대리에서 서남쪽으로 6㎞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총 2,800그루의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나무들의 나이는 300∼600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비자나무 숲의 유래는 옛날에 마을에서 제사 지낼 때 쓰던 비자 씨앗이 제사가 끝난 후 사방으로 흩어져 뿌리를 내려 오늘날의 비자숲을 이루게 됐다는 것과 자연림의 형태가 사람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오늘의 숲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비자나무 잎은 두껍고 작으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봄에 넓게 피며 열매는 가을에 길고 둥글게 맺는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열매는 구충제 및 변비 치료제나 기름을 짜는 데 쓰인다.

 

비자나무 열매는 약제로, 재목은 나라의 진상품으로 공납 되었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 비자림은 규모가 세계적으로 크고 학술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제주 비자림

 

현재 문화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어떤 곳인가?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청의 자문기구로서 9개 분과로 구성돼 있으며, 국가지정(등록)문화재의 지정(등록)·해제, 문화재 현상변경, 역사문화환경 보호, 매장문화재 발굴, 세계유산 등재 등 문화재 관련 주요 안건을 조사·심의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자연유산분야에서 위원장이 나온 것은 처음 아닌가?

“15년 전 이인규 서울대 교수 이후 두 번째다. 100명의 위원들이 자연과학자를 제 30대 위원장으로 선출한 이유는 기후위기, 지구온난화가 일상적인 단어가 된 요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성을 함께 지닌 복합유산이 오래되지 않아 영향을 받게 될 것을 느꼈기 때문으로 본다. 그에 대한 경보 신호를 자연과학자의 시각에서 울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문화재하면 국보 보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 중 자연유산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나?

“천지만물은 사람이 만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있다. 사람이 만든 것을 문명이라 하고, 그 진수를 문화유산으로 아끼고 보존한다.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을 우리는 자연이라 하며, 역시 그 진수를 자연유산으로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자연유산에는 동물, 식물, 지질, 명승 등이 있다. 홍도, 설악산, 한라산, 독도, 성산일출봉 등 모든 국민이 알고 있는 곳이 천연기념물이다. 그 밖에 열목어, 고니, 황새, 따오기, 저어새와 철새, 역사와 사연이 깃든 다양한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숲 등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제주의 동굴과 공룡발자국도 지질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고있는 이곳 비자나무 숲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있다. 또한 거제의 해금강, 서울의 삼각산, 청송 주왕산, 진안 마이산, 영도의 태종대 등 120여 곳도 명승 문화재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

 

자연유산법의 제정과 국립자연유산원의 설립 필요

 

전체 문화재 중 자연유산의 비중은 얼마나 되나?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과 명승 등이 국가지정문화재(국보 350, 보물 2263, 사적 519, 명승 120, 천기 466) 중에서 16%에 해당하지만 그 비율에 상응한 국가 유산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자연과학 전공자들의 게으름이나 무신경이 불러온 일이기에 그 일원으로 저 역시 책임을 느낀다.”

 

자연유산은 기후변화와도 관계가 깊은데...

“급속한 기후위기와 지구온난화에 자연유산과 사적, 명승 등 복합유산은 그대로 노출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그 첫걸음이 자연유산법의 제정과 국립자연유산원의 설립이다. 현재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보호 관리 전문 인력과 전시 공간이 부족하다. 문화유산은 인공적인 건축물 등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천연기념물은 자연의 변화하는 환경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지금까지 수집된 표본을 연구하고 자료를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국립 자연유산원 건립으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가 가능해지길 바라고 있다.”

 

일본식 명칭 ‘문화재’ 대신 ‘국가유산’으로 표현해야

 

4월에 문화재 명칭변경 및 분류체계 개선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어떤 내용인가?

“지난 4월 문화재위원회는 무형문화재위원회와 합동 분과위원장단 회의를 열어 재화적 성격이 강하게 반영된 일본식 용어인 ‘문화재’ 대신 미래 세대에 물려준다는 의미가 포함된 '국가유산'이란 표현을 쓸 것을 문화재청에 전달했다.

분류체계는 국가유산' 아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나눴다.”

 

자연유산을 따로 떼어낸 게 눈에 띄는데...

“십수 년 전 청와대에서 날아다니는 새가 어떻게 문화재인가? 라는 문의가 있었다고 한다. 문화유산을 재화적 성격으로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서 발생한 헤프닝이다. 자연유산은 유네스코의 국제기준에 맞춘 것이다. 유네스코는 인류가 만들어낸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연물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문화유산 정책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이 국민의 여가· 힐링 원천자원으로 즐길거리, 볼거리, 체험 콘텐츠로 공급되어, 일상생활 속에서 향유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국제전문가 간의 교류·네트워킹을 활성화하고, 세계유산 등재 여건을 강화해 우리 유산의 우수성을 세계에 확산할 필요가 있다. 또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대처할 수 있는 대응력 확대 정책도 필요하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은 자연유산 연구에 평생을 매진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04)과 은관문화훈장(’19)을 받았다. 또 30여 년간 (사)숲과문화연구회 대표, (사)생명의숲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소나무 박사‘란 별칭으로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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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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